출판사 제공
책소개
“지금까지 우리는 이 섬의 진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수없이 짓밟힌 땅, 그 위에 남겨진 슬픔과 희망의 발자국
인문학자 김상근과 함께 시칠리아의 역사를 걷다

지중해의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고, 색깔도 맛도 아름다운 음식 위로 햇살이 부서진다. 그리스, 로마, 스페인, 이슬람 등 다양한 문명의 흔적이 남아 있어 볼거리도 다채롭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이곳을 처음 찾아왔을 때 자연에 감탄하며 “모든 섬의 여왕”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와 유럽을 연결하는 다리이자, 그리스인들이 지중해의 거대한 곡물 창고라고 불렀던 곳. 바로 이탈리아반도 아래쪽에 있는 삼각형 모양의 섬, 시칠리아다.
그러나 한편으로 시칠리아는 활화산의 열기와 바짝 마른 햇볕 아래 끊임없는 목마름에 시달리는 곳이자, 마피아가 탄생한 곳이며, 무려 열네 번에 걸친 외세의 침략으로 인한 절망의 역사를 품은 곳이다. 대륙 간 다리라는 것은 곧 수많은 사람이 밟고 건넜다는 뜻이고, 다양한 문명의 흔적이 남았다는 것은 여러 세력의 지배를 겪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역사와 삶을 연결하는 인문학자이자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시리즈의 저자 김상근 교수는 시칠리아 사람들의 얼굴에서 이러한 이중성을 목격하고, 시리즈의 네 번째 신간 《시칠리아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를 썼다.

“뒷골목을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그 여행은 미완성이다”
낙원보다 아름다운 섬, 시칠리아의 이면

2,800년이라는 유구한 세월 동안 시칠리아는 단 한 번도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거나 독자적인 문명을 발전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기원전 800년경 시칠리아에 처음 식민지를 개척한 페니키아인들에 이어 그리스, 로마, 반달족, 이슬람, 프랑스 노르만, 호엔슈타우펜 왕조, 카페 왕조, 아라곤 왕조, 합스부르크 왕조, 부르봉 왕조 등이 차례로 찾아와 그 땅을 유린하고 약탈했다. 기원전 6세기에는 잔인한 참주가 공포 정치를 펼쳤고, 10세기에는 이슬람 문명의 지배로 새로운 종교에 적응해야 했다. 13세기 신성 로마 제국의 프리드리히 2세가 법치를 도입하고 근대 국가의 발판을 놓았지만, 곧 프랑스 카페 왕조가 달려와 중세 봉건 제도로 되돌려놓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연합국과 추축국의 전쟁터가 되기도 했다. 각국의 군화가 발자국을 남기고 떠날 때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칠리아 주민들이 입을 뿐이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시칠리아의 다사다난한 역사를 통찰하는 한편, 그 섬의 ‘진짜 얼굴’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시칠리아의 어느 어촌에서 만난 어부의 사진을 표지로 택했다. 경계하는 눈동자와 가늘게 떨리는 입술, 그러나 깊게 팬 주름마다 서려 있는 용기와 강인함. 그의 얼굴은 곧 시칠리아의 모습이다. 2,800년 동안 체념과 희망 사이를 오갔던 시칠리아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 상태일까? 일견 무심해 보이지만 눈동자에는 긴장과 경계심이 가득한 그들의 얼굴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고, 또 느껴야 하는가? 시칠리아는 슬픔의 땅이다. 수탈과 압제에 시달린 땅이다. 지금도 여전히 그 땅은 정치적, 경제적인 고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땅의 역사는 결국 그 땅에 사는 인간에게도 흔적을 남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에야 독자들은 시칠리아의 진정한 얼굴을 만날 것이다. 거친 파도와 바닷바람 속에 숨은 그 섬의 진짜 상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