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3

당신에게 잊혀진 것은 무엇인가요?

몇 번의 이사를 하면서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물건들은 과감하게 정리를 합니다. 하지만 1년 동안 한 번도 꺼내보지 않았던 물건임에도 이사 때마다 1순위로 꼭 챙기는 물건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30년 동안 살면서 받았던 편지를 모아놓은 상자입니다. 이 상자는 장롱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다가, 대청소 혹은 이사를 할 때 한 번씩 꺼내보는데, 상자 안의 편지를 하나하나 읽으면서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나와 마주하곤 합니다. 초등학생 시절 단짝과 나눴던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담긴 편지부터 수학여행 떠나는 날 엄마에게 용돈과 함께 받았던 사랑이 담긴 편지 그리고 첫 남자친구로부터 받았던 풋풋한 연애편지까지. 내가 그동안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지,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 상자 하나만 열어보면 모두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가끔 내게 잊혀졌던 무언가를 다시금 마주하게 될 때면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낍니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사느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요즘 같은 때에, 잊혀진 것을 만나게 되면 그 희열은 배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지친 나를 위로해주는 버팀목이 되기도 하죠.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잊은 게 아니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게서 잊혀진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빠르고 바쁘게만 흘러가는 요즘 같은 시대에, 잊혀진 것을 다시금 꺼내어 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서 더 기억해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 쟤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뜨거운 열정, 누군가를 향한 진실한 마음, 주변 사람들과 주고받는 따뜻한 정. 이처럼 어떠한 감정일 수도 있고, 손에 잡히는 무언가일 수도 있겠죠. 학년이 올라갈 때 같은 반이 못 되어 세상이 끝날 듯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던 단짝 친구, 마르고 닳도록 듣고 또 들어 나중엔 늘어날 대로 늘어나 버린 카세트테이프, 아빠에게 몇 날 며칠을 졸라 결국 내 손안에 갖게 된 MP3…. 우리에게 잊혀진 그것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가 그동안 잊고 지낸 것은 무엇일까요?

편집장 김경희